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9 PBP, 힘들었던 순간.

by 웅헤헤 2019. 9. 10.
 

2019 PBP, 힘들었던 순간.

 
달리면서 수많은 계산을 한다.

내가 달리고 있는 속도, 남아있는 거리, 완주 시간 등 다리는 계속 돌고 있지만, 동시에 머리도 계속 돌아간다. 거리가 길어지면 가끔 이 머리 돌리는 일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PBP에도 여지없이 내 머릿속 CPU는 잘못된 계산을 쏟아냈다.

특히, 전기 사용량을 잘못 예측하고 배터리를 놓고 오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여분으로 챙기려던 1만 짜리 보조배터리를 몽파르나스 숙소에 놓고 온 것이다. ㅎㅎㅎ

배터리가 없음을 안 것은 PBP 이틀째 아침, 배터리 부족으로 어느 전자 기기를 먼저 포기할지 순서를 매기기 시작한 건 3일째 밤부터였다.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예상보다 전조등과 가민에 배터리가 빠르게 소진되었다. 게다가 야심 차게 준비한 18650 충전 겸용 보조배터리는 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해서 7000 mAh 짜리 배터리가 핸드폰 한번 완충하니 완전히 방전히 되고 말았다.

가민, 전조등 1, 전조등2, 가민충전용 보조배터리. 차가운 새벽날씨에 배터리가 광탈할 줄 누가 알았으랴... ㅜㅜ 누가 파리 40도래!!!

브레스트를 돌아 악명 높은 루데악을 향해 갈 때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전기량은 핸드폰 20%, 가민 10%, 전조등 용 18650 5개... 계산이 되질 않았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짐을 챙겼건만, 어째서 내 짐 보따리에 보조 배터리가 없는 것인가... 18650을 보조배터리 대용으로 돌리면, 가민은 몇 번 충전될 것 같지만 어떤 기기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전조등은 밤에 꼭 필요하니 포기할 수 없고 (그마저 최저 수준의 밝기를 유지해야만 했다) 우선 순위가 낮은 핸드폰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 사진도 찍고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해도 가민을 몇 번 충전하지 못하니, 배터리가 부족하군. 머리가 복잡했다. 아찔아찔했다.

각 CP마다 미케닉이 있던데, 보조배터리를 팔까? 달리는 내내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루데악에 생니콜라 히든 CP에 도착해서 우선 늦은 저녁을 먹고, 의자 한쪽을 파고들어 어찌할지 고민을 했다. CP 미케닉에게 물어보니, 배터리는 없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 진짜.. 어쩌지... 배터리가 없어서 DNF ??

(이건 아닌데..)

그러다가 갑자기 PBP 참가 랜도너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던 카톡이 생각이 났다. 여기에 글을 올리면 혹시 도움의 손길이 있을까나?? 기대반 걱정반으로 짧게 글을 올렸다.

"배터리 여분 있으신 분... 보조배터리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다들 달리는 와중이라 확인이 늦어지고 있었다. 단톡방은 아비규환이라고 보는 게 적절했다. 낙차 소식, 몸 상태가 나쁘다는 소식, 브레스트 입성 소식, 각종 정보, 달리던 중간중간 매번 확인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쉴 때 한번씩 챙겨 보는 중이었다. 정말 한 번씩 확인할 때마다 100건 이상의 대화가 왔다 갔다 했다. 그 와중에 배터리를 구걸하는 나의 처절한 외침은 빠르게 스크롤 되어 사라져 갔다.

"어디세요?"

"저 2시간 30분 후면 웅헤헤님 CP에 도착하는데, 기다릴 수 있으세요?"

"배터리가 남아돌아서요"

헐!!! 남아도는 배터리를 주시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파리 입성부터 함께 했던 "간 큰 남자"님께서 넘쳐나는 보조배터리를 주시겠다고 했다. ^^ 오~~~ 감사~~~~ 감사합니다.

사실 '간 큰 남자'님은 출발시간이 나보다 2시간 뒤니, 간큰님과 만난다는 건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기다리는 수밖에... 고장 난 시피유지만 머리를 잽싸게 굴려 보았다.

표정을 보라... 가관이다ㅜㅜ 배터리가 없어 넉이 나간 표정이다

'간큰님이 오실 때까지 대략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배터리를 수혈받고 날밤을 새우며 달린다. 그러면 시간 만회가 가능하다.'

'여긴 잠자리가 루데악보다 좋으니 잘 하면 숙면도 취하고 배터리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취침 서비스를 신청하고 12시 30분까지 취침을 취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제시간에 '간큰'님은 도착해서 배터리를 넘겨주셨다. 20,000 mAh !!!!, 감사합니다. 정말 사람하나 살리셨습니다.

ㅜㅜ

피곤해서 잠을 자고 가겠다는 '간큰'님을 뒤로하고

충만해진 배터리의 은혜를 다시한번 감사하며 페달을 밟아 나에게는 어디보다 악명 높았던 CP 루데악으로 힘차게 (??) 출발했다.

랜도너스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다. 다들 어쩜 그렇게 친절들 하신지, 가끔은 그 호의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호의를 베푼 분들은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음에 다른 분에게 도움 주시면 돼요~"

뭐야.. 다들 천사야? 각자 레이스를 하고 있지만, 그래서 랜도링은 또 같이하는 레이스라고 생각한다. 따로 또 같이... 랜도링의 매력, 자전거의 매력이다.

아... 기쁘고 또 너무나 고맙다.

밤톨님의 선물... 먹을 것이 부실하던 3일차에 큰 힘이 되었다. (일본꺼라 좀 찜찜하지만.. 그래도 맛과 편리성은 짱이었음)

CP 에서 판매하던 커피 ㅎㅎㅎ 사약아님

여기가 생니콜라 히든CP 같은데...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브레스트 다리 위에서 포즈를 잡아 보았다 지나가던 명철님의 스파이샷

낮에는 따가운 햇빛,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날씨 진짜 사기다

Measure
Measure